3월, 2020의 게시물 표시

어머니의 '뽕브라'

어머니의 '뽕브라' 조현세 ㈔도시연대 부이사장 도시계획기술사 2012.10.09 23:30 유년기에 내 시선은 재봉틀에 열중하신 엄마 젖무덤의 흔들림에 멈추곤 했다. 한여름 세모시 적삼을 적시는 엄마의 땀방울보다 젖무덤 사이의 'ㅅ'자를 거꾸로 한 곡선이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일까. 그럴 때면 엄마는 삯바느질 마감으로 분주한 손놀림을 멈추지도 못한 채 물끄러미 서있는 내게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재봉틀 앞에 앉아서 단이나 똑바로 박히게 잡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청상과부가 된 뒤 사십여 년을 살아오셨지만 강골(强骨) 기질로 큰 병은 없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환갑잔치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에 왼쪽 가슴에 멍울이 크게 잡힌다며 걱정을 하셨다. 대학병원을 찾은 날 의사는 조직 검사도 할 틈이 없다며 서둘러 제거 수술을 권했다. 나 역시 동의서를 썼다. 이제 어머니의 가슴은 더 이상 훔쳐볼 대상도 아니며 어느 누구도 만지거나 봐줄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았다. 책임감을 완수한 아들로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퇴원 후에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가끔 병원에서 예방 차원의 검진 요령 엽서가 날아왔지만, 그 또한 어머니가 혼자 이십여 년을 해결해 오셨다. 어머니는 여름에도 꼭 내의와 겉옷을 갖춰 입으셨다. 어쩌다 옷을 갈아입으실 때면 문을 슬며시 닫았다. 그런 때에는 '연세도 높으신 분이 어지간히 내외하시네' 하면서 혀끝을 차기도 했다. 외아들이지만 어머니의 유방 한쪽이 없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덤덤하게 살아왔다. 혹여 누가 어머니의 어느 쪽 가슴을 도려냈는지 묻는다 해도 기억조차 아리송한 놈이 되는 사이에 나 또한 환갑이 지나갔다. 그런 삶 속에서 어머니는 자주 다니던 대중목욕탕조차 못 가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오른쪽 팔에 마비가 오고 말았다...

돌고 도는 선행

한 흑인 청년이 베푼 선행이 화제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부자 할머니가 혼자 차를 운전하다, 자동차가 고장나서 어쩔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흑인 청년이 자동차를 고쳐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돈을 주려 했지만 그 청년은 받지 않으며,나중에 힘든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라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길을 가던 중 휴게소에 들렀는데 만삭의 임산부가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봤다. 할머니는 고액의 팁을 만삭의 임산부에게 주며,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역시나 힘든 사람을 도와주라고 말했다. 사실 이 임산부는 가난해서 아이를 낳을 돈도 없었는데 할머니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집에와서 신랑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더니 신랑은 깜짝 놀랐다. 이 임산부의 신랑은 바로 할머니의 차를 고쳐준 청년이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201&docId=253614883&qb=65Sw65y77ZWc7J207JW86riw&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

어느 판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어느 판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어 느 판사의 이야기 입니다.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법정에서 노인을 향해 "늙어가지고  염치없이 빵이나 훔쳐 먹고 싶습니까" 라고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이에, 노인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때부터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판사가 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당신이 빵을 훔친 절도행위는 벌금 10달러에 해당됩니다."라고 판결을 내린 뒤 방망이를 '땅땅땅' 쳤습니다.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사정이 딱해 판사가 용서해줄 줄 알았는데 해도 너무  한다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판사가 판결을 내리고 나더니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 벌금은 내가 내겠습니다" 내가 그 벌금을 내는 이유는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벌금입니다. 나는 그동안 좋은 음식을 너무나  많이 먹었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하고 그 벌금을 대신 내어드리겠습니다." 이어서 판사는 이 노인은 이곳 재판장을 나가면  또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여 방청한 여러분들도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먹은 댓가로 이 모자에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 주십시요" 그러자, 그 자리에 모인 방청객들도  호응해 십시일반 호주머니를 털어 모금을  했고 그 모금액이 무려 47달러나 되었습니다. 이 재판으로 그 판사는 유명해져서 나중에 워싱턴 시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리야'판사라고 전합니다.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8&dirId=80701&docId=252526717&qb=65Sw65y77ZWc7J...